Narcissism(자기애)의 유래는 Ovid의 신화, 변신(Metamorphoses)에 나오는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Narcissus가 자기도취에 빠진 이야기에 있다. 자기애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는 Freud에서부터 시작해서, 대상관계 이론가들인 Kernberg와 Kohut에 의해 발전되었다. 반면, 기독교 인류학자인 Pannenberg는 신학적 입장에서 자기애를 이해했는데, Bergner가 이 두 입장을 통합적으로 접근하여 정리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Freud는 자기애를 정상적(normal) 자기애와 병리적(pathological) 자기애로 구분했다. 더 세분화해서 구분한 사람들도 있지만 Kernberg와 Kohut은 Freud의 구분을 발전시켰는데, 정상적 자기애는 유아가 자기 필요와 욕구만을 먼저 채우고자 하는 현상인 데 비해, 병리적 자기애는 정상적인 자기애가 충족되지 못한 채 내면으로 들어가 버리게 되면 병리적인 자기애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만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은 소위 안중에도 없이 대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려 하고 그 주위에 있는 사람은 초라함을 느끼게 하는 그야말로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Pannenberg는 자기애를 자연적인 현상과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이해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서 자기애는 Freud가 말한 대로, 유아가 자기애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으로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반면, 그는 자기애가 유아기를 지나서도 자기 스스로 안전감을 계속 추구하고자 할 때 비정상이라고 보았다. 즉, 신학적으로 볼 때, 이는 죄로 인해 인간이 하나님과 단절되면서 생긴 자기 중심성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타락 이후 정상적인 자기애가 결국 비정상적인 자기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단절로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그 죄의 영향 아래 태어난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 불안해하면서 자신을 소외시키게 된다고 하였다. 자기애라는 것이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내면으로 가져가서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면, 이는 곧 하나님과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건강한 자기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지만, 병리적 자기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 이해 대해 Kernberg와 Kohut은 자기애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진솔하게 사랑할 줄을 모른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기애는 우울과 분노로 나타나고, 다른 정신 장애들과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Pannenberg도 이러한 이해에 동의하지만, 그는 자기애는 정상적이거나 자연스러운 것이 더는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타락 이후의 인간은 모두 자기 위주의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annenberg는 자기애가 인간 본연의 보습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타락 이후 현재 인간의 본성으로는 자기애가 자연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원래 그런 모습으로 창조하시지는 않았다는 면에서는 본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자기애적인 특성은 하나님이 창조한 상태라기보다는 타락 이후 나타난 현상, 곧 죄된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Pannenberg와 Kernberg, Kohut은 인간 발달과정을 통해 이러한 원래의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점차 성장해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하지만, 치료에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정신 병리적 관점에서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자신의 독특성이나 능력에 대해 과장된 자신감과 성공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싶어 하는 성격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타인을 이용하기도 하며, 같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초라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유형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Pannenberg의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의 특성으로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애와는 구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치료적 접근도 다를 수밖에 없다. Kernberg와 Kohut은 그 과정을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통해 관계가 회복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지만, Pannenberg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자기애가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해의 차이는, 정신병리로서 자기애를 보느냐 아니면 인간의 죄인 된 상태에서 오는 자기애를 보느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Pannenberg는 신학적 입장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누구나 자기애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보다 일반적인 인간 죄성의 차원에서 말한다면, Kernberg와 Kohut은 그 기준보다 더 심한 경우의 정신 병리적 차원에서 자기애를 이해하고 치료적 접근을 이야기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Freud, Kernberg, Kohut은 타락 이후 인간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유아기적 자기애에서 이해를 출발시켰다면, Pannenberg는 타락 전과 타락 이후의 인간 본성을 비교하면서 자기애를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대상관계 심리학자들은 다른 사람의 사랑이 필연적으로 필요한 유아기의 자기 사랑이 정상이라고 보고, 유아기적 자기애가 만족하면 더는 자기애로 빠지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자기애로 빠졌을 경우 그 이후 인간관계에서 그러한 사랑의 경험이 있어야 자기 속으로 빠져버린 상태에서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Pannenberg는 그 유아기적 자기 사랑조차 타락의 결과라고 보고, 그 유아기적 자기애는 사랑을 받는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의 상태로 본다. 그러므로, 인간은 유아기적 자기애가 채워졌다 하더라도 자기애적인 존재라는 것이고, 치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이 자기애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대로, 자기애를 어떤 차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달라지지만, 이 두 입장이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인간성의 한 단면이기도 한 자기애와 자기애적 성격장애에 대한 두 접근 간의 유익한 대화로서 이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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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자 교수